올해는 유독 기후 변화가 심했다. 예상외 긴 장마에 이어 잇따른 태풍에 농심(農心)은 타들어간다. 논농사는 물론 모진 바람에 과수·밭농사도 곳곳이 흉작이다. 이 때문에 추석 밥상 물가도 덩달아 들썩인다. 이런 때 마켓컬리, 쿠팡 등에서 판매하는 샐러드 채소 브랜드 ‘샐러딩’은 오히려 반색이다. 가격 변동이 크지 않은 데다 수급도 지장이 없어서다. 샐러딩 채소를 공급하는 곳은 스마트팜 전문업체 ‘만나CEA’다. 충북 진천 6000평 규모 농장에서 세계 최대 아쿠아포닉스(무농약 수경재배) 방식으로 날씨와 관계없이 꾸준히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덕분에 유명 유통 채널 입점 요청이 줄을 잇는다. 만나CEA는 창업 후 처음으로 분기 15억원 매출을 내다보게 됐다.

스마트팜이 실험 단계를 넘어 일상 속으로 훅 들어왔다. 농업 스타트업 ‘엔씽’처럼 해외 진출을 하는가 하면 민승규 국립 한경대 석좌교수를 단장으로 한 ‘디지로그팀’이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2회 세계농업AI대회(Autonomous Greenhouse Challenge)’에서 농부보다 많은 수확량을 내면서 3위를 차지해 전 세계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스마트팜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농부 vs AI’ 대결서 AI 완승

식물재배기 가정으로도 쑤욱~

세계 5대 식량 수입국. 무역수지 적자만 10조4238억원(2018년 기준).

한국 식량 상황이다. 안보와 직결되는 식량자급률 사정은 더 나빠지고 있다. 2009년 56.2%였던 국내 식량자급률은 2018년 46.7%를 기록했다. 10년 만에 9.5%포인트나 낮아졌다. 2015∼2018년간 사료용 수요까지 감안한 곡물 자급률은 평균 23%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농업 GDP 비중 역시 1960년대 50%였던 것이 2020년대 2% 미만으로 현저히 떨어졌다.

이에 더해 갈수록 기후 변화가 심해지고 있다. 각종 농산물 주산지 지도도 매년 달라지는 분위기다. 대구·경북 지역 대표 과일이던 사과는 충북과 충남에 이어 최근에는 강원도 정선 등 산간지역으로 재배지가 이동했다.

게다가 가뭄, 홍수, 긴 장마 등 전례 없는 이상기후로 노지 재배(露地栽培·작물을 자연환경에서 가꾸는 일)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생존에 필요한 식량은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전 세계 인구 증가로 2050년에는 현재보다 70% 이상 식량을 더 생산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기후 변화와 고령화로 인해 농업 생산력은 갈수록 줄어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IT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팜’이 주목받고 있다. <최영재 기자>

‘기후 이변 속에 생산은 더 안정적으로 지금보다 많이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안으로 떠오른 농업 재배 방식이 스마트팜이다.

스마트팜은 사전적 의미로 농·림·축·수산물의 생산·가공·유통 단계에서 정보 통신 기술(ICT)을 접목해 지능화된 농업 시스템을 뜻한다. 생육·재배환경을 데이터 기반으로 제어하는 농업 방식으로 이해하면 쉽다. 1994년 농업 개방을 필두로 한 우루과이라운드 파동을 겪은 후 우리나라는 고부가가치 농축산물 양산에 눈을 돌리게 됐다. 이때부터 스마트팜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부터 유리온실, 비닐하우스 등에 센서를 달고 원거리 제어 방식을 쓰는 시설원예 부문에서 상당히 기술이 진척됐다는 평가도 있다.

눈을 세계로 돌리면 스마트팜은 이미 주류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세계 스마트팜 시장 규모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9년 세계 스마트팜 시장 규모는 300조원에 달한다.

다만 국내 스마트팜 시장은 이제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2019년 기준 시장 규모는 5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아직 농업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다. 다만, 성장가능성은 높다는 평가다. 실제 국내 스마트팜 시장은 2015년부터 연평균 14.5% 성장률로 빠르게 크는 중이다. 2022년에는 약 6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마트팜 전환을 위해 정부는 물론 민간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나오고 있다.

태풍마저 숨죽인 곳…스마트팜의 재발견 – 매경이코노미

 

▶정부 2029년까지 7160억 투자

▷대기업·스타트업 도전도 활발

농식품부는 2022년까지 스마트팜 7000헥타르(ha) 보급 목표를 세우고 스마트팜 혁신밸리 4개소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경북 상주, 전북 김제를 스마트팜 혁신밸리로 이미 선정하기도 했다. 올해부터 2029년까지 10년간 7160억 원을 투입, 스마트팜 고도화를 추진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과기정통부는 미래 스마트팜 기술 개발, 중소벤처기업부는 스마트공장 보급 사업을 확대하고 투자 유치를 위한 펀드도 조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간에서도 스마트팜 관련 다양한 시도와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축산 분야에서는 하림그룹 계열 선진이 앞서 있다.

선진 산하 제일종축 농장은 총 28만 제곱미터(약 8만5000평)의 부지에 1만6000마리의 돼지를 사육한다. 2012년부터 ICT와 축산업 융·복합 스마트팜으로 기획, 악취, 오염, 질병이 없는 `3무(無)`농장을 실현했다. 각 돼지의 귀에 RFID 칩을 부착해 건강상태, 사료 섭취량 관리를 하고 있는데다 넓은 활동 공간을 제공하는 군사 사육을 시스템화해서 ‘동물복지 축산물 인증’을 받았다. 이를 통해 프리미엄 돼지고기 대접을 받으며 매출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식물 재배 부문에서는 스타트업의 활약이 돋보인다.

겉보기엔 흔한 컨테이너 박스같아 보이지만 온도와 습도, 빛, 영양성분까지 모든 환경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큐브 OS`를 장착한 스타트업 ‘엔씽’의 `플랜티 큐브(Planty Cube)`가 대표적. 엔씽은 플랜티 큐브로 CES2020에서 최고 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AI(인공지능)를 적극 활용하려는 시도도 잇따른다.

네덜란드 바헤닝언대학이 매년 주최하는 세계농업AI대회에서 그 실마리를 볼 수 있다. ‘인간농부 대 AI’로 팀을 나눠 품질·수량(50%), 지속가능성(20%), 재배 전략(30%) 등을 기준 삼아 수확량 대결을 펼치는데 AI팀이 매번 결과물에서 앞섰다. 특히 올해 대회에서는 민승규 한경대 석좌교수가 단장을 맡고 스페이스워크 등 한국 AI전문가 그룹이 참여한 `디지로그팀`이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경엽 스페이스워크 CTO는 “실제 농부보다 순이익 면에서 더 나은 결과를 냈다. 농업에는 다양한 변수가 많지만 ‘머신러닝(계속 AI가 학습하며 진화)’을 통해 매년 정량화,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발전가능성이 높다. 2~3년 내에 농업 재배 자동화, 생산성 최적화의 기술을 만들고 활용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AI 기반의 영상분석 기술을 활용해 농약 사용을 줄이고 노동력을 절감하는 기술 개발에 나선 스타트업도 있다. 쉘파스페이스가 그 주인공. 이 회사는 식물이 성장할 때 필요한 빛에 집중했다. 식물이 성장단계·환경마다 필요한 빛의 파장을 분석해 이걸 AI가 시간대별로 구현하는 `맞춤형 가변라이트`를 개발했다. 윤좌문 쉘파스페이스 대표는 “품종별·생육단계별 조명 최적화를 통해 고부가가치 식물 재배를 하는 광원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 이를 스마트팜에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리온실 등 시설보다 소프트웨어 보급에 집중하는 스마트팜 업체도 있다.

신상훈 그린랩스 대표는 “우리 회사는 농사를 짓는 주체가 아니다. 대신 농민을 농업이라는 사업을 진행하는 사업주로 보고 효율적인 농업을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그린랩스의 대표적인 서비스는 `팜모닝`이다. 1세대 스마트팜이 환경정보에 따라 원격으로 농업 생산시설을 제어하는 것이라면 클라우드 기반 2세대 스마트팜 서비스인 팜모닝은 실시간 환경정보와 데이터를 분석해 얻은 정보로 세밀하게 농장을 원격·자동 제어한다. 그린랩스의 서비스로 원격 농업에 자신이 생겨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농민의 사례가 있을 정도다. 신 대표는 “한국에서 딸기 농사를 짓던 농민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베트남에서 원격 재배를 시작했다.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딸기가 인기 있어 비싸게 팔려 사업성이 있다”고 말했다.

가정용 식물재배기 보급에 나서는 업체도 상당수다. 교원은 월 2만원대 비용만 내면 상시 점검 인력을 보내주는 식물재배기 ‘웰스팜’사업을 안착시켰다. LG전자도 내부 선반에 일체형 씨앗 패키지를 넣고 문을 닫으면 자동으로 채소 재배가 시작되는 식물재배기를 조만간 출시할 예정이다.

▶데이터 기반 유통 보강해야

▷안정적인 수요처 확보가 핵심

스마트팜이 대세로 떠오르긴 하지만 당장 농업혁명이 일어난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일반 농가 대비 설치 비용이 많이 들고 운영 노하우가 없으면 실패하는 사례도 적잖아서다. 한때 애플망고가 뜨자 남해안 지역 일대 애플망고 농가 여러곳이 스마트팜 시설을 도입했다가 공급 대란으로 작물 전환 혹은 폐업하는 사례가 적잖았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주최 ‘스마트팜으로 여는 농업의 미래’ 포럼에 발제자로 나선 양중석 KIST 스마트팜연구센터장은 “스마트팜은 단순히 스마트제어, 스마트센싱, 모니터링 등 시설 업그레이드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안정적인 수요처 확보, 데이터를 이용한 유통 관리 서비스, 유통시세 분석 등 스마트 기획·분석이 함께 붙어줘야 국가 차원의 스마트팜 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식탁 위에서 직접 채소를 키워 먹을 수 있습니다.’

말을 듣자마자 귀를 의심했다. 식물을 키우는 데 흙과 햇빛이 필요한 건 상식이다. 그런데 그 상식을 부수는 물건이 나왔다. 바로 교원에서 내놓은 ‘웰스팜’. 전기 콘센트를 꽂고 물과 배양액만 넣어주면 먹을 수 있는 채소가 계속 나온단다. 그것도 14일만 키우면 된다고. 과연 그게 가능할까? 직접 결과를 보기 위해 사무실에서 채소를 길러봤다.

기기는 모내기처럼 성장한 식물을 옮겨 심는 방식이다. 바닥에 물을 채우고 키트에 식물을 채우면 설치가 끝난다. 사람이 할 일은 시간마다 물을 채운 뒤 배양액을 주고, 가끔 죽은 이파리를 솎는 게 끝이다. 햇빛이 없어도 내부 LED가 광합성을 도와준다.

하루가 지나자 식물이 약간 시들해졌다. 뿌리 몸살 때문에 식물이 잠시 시들해진다고. 설명을 미리 들었는데도 걱정이 커졌다. 다행히 기우. 5일이 지난 뒤 보니 잎들은 쌩쌩해졌고 크기도 상당했다. 놀란 것도 잠시,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들어 곰곰이 기계 주변을 맴돌았다. 생각해보니 물 보충을 무려 5일이나 깜빡했다. 문을 여니 물이 절반이나 빠진 상태였다. 종이컵 2잔을 들고 뛰어다니며 10번을 부어 물을 채웠다.

어느 정도 자란 잎을 수확해봤다. 이때 큰 잎만 따야 한다. 작은 잎마저 모두 따버리면 더 이상 식물이 자라지 않기 때문. 수확하고 나서 1~2주 시간이 지나면 다시 수확이 가능한 크기로 자란다. 키트에 담긴 식물을 모두 따면 양은 꽤 나온다. 샐러드로 먹으면 1인용, 쌈채소로 곁들인다면 2~3인이 먹을 양이 나온다.

맛은 어떨까? 땅에서 키운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서울 한가운데서 자란 야채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싱싱했다.

총평. 야채를 안심하고 먹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병충해, 농약이 없어 안전하다. 따서 바로 먹어도 괜찮다고. 바로 먹는 게 꺼려지면 씻어 먹으면 된다. 다만 가격은 약간 부담이다. 렌털 요금이 월 2만~3만원이다. 전기료도 2000원가량 나온다. 가격 감당이 힘들다면 ‘아직은’ 사 먹는 것을 추천한다. 시중 마트 기준 2만5000원이면 로메인 상추 2㎏은 거뜬히 살 수 있다.

[박수호·반진욱·박지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77호·추석합본호 (2020.09.23~10.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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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경제 2020.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