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안에서 채소를 기르는 게 가능할까? 그리고 그렇게 기른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어 판매하거나 주변 식당에 납품하는 게 가능할까?

농업 기술에 별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생각할만한 질문들이다. 햇살 한 줄기 들지 않는 지하철역 안에서 농사를 짓는 게 가능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설사 과학 기술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지하공간에서 수확한 채소를 과연 믿고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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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답십리역 5번 출구 인근에 자리잡은 식물공장 @더농부

하지만 지난달 5월 17일 서울 답십리역 역사 안에서 문을 연 식물공장은 햇볕에 비추지 않는 지하공간에서도 충분히 안전한 농산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국내 최대 식물공장 업체인 팜에이트(팜8)이 서울시내 지하철 운영을 담당하는 서울교통공사와 함께 손잡고 만든 이 식물공장에선 매일 하루 5㎏씩의 채소들을 수확하고 있다. 3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50㎡(약 16평) 남짓한 공간 안에선 이자트릭스, 카이피라, 버터헤드레터스, 프릴아이스, 파게로, 스텔릭스 등 여섯 종류의 양상추와 쌈 채소 1200여 포기가 자라고 있다.

실내 공간에서 햇빛 대신 인공조명을 활용해 채소를 키우면서 각종 센서를 활용해 온도, 습도, 빛의 양, 양분, 이산화탄소 농도 등의 환경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농산물에게 가장 알맞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실내 농장. 식물공장을 아주 간단하게 정의 내리면 이와 같다.

물론 학술적, 산업적으로 식물공장을 설명할 때는 훨씬 더 복잡한 설명이 따라붙지만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인이라면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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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공장에서 자라는 쌈채소들 @더농부

그렇다면 식물공장 안에서 각종 채소를 키워서 프랜차이즈 식당과 대형 마트에 납품하는 사업을 하는 업체가 갑자기 지하철역 안에 조그만 식물공장을 연 이유는 무엇일까? 16평 남짓한 식물공장 안에서 채소를 키워봐야 그 수량도 얼마 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여기 와서 식물공장 안의 미세먼지 농도를 한번 확인해보세요. 바깥에선 미세먼지 농도가 100㎍/m³이 넘을 때도 흔한데. 이 안은 항상 미세먼지 농도가 4~5㎍/m³ 밖에 안 돼요. 초미세먼지도 마찬가지로 바깥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고요. 미세먼지 없는 실내공간에서 키운 저희 농산물이 더 안전하다는 걸 소비자분들께 직접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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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자판기에 대해 설명하는 강대한 팜에이트 부사장 @더농부

최근 답십리역 식물공장에서 만난 강대현 팜에이트 부사장은 지하철역 안에 식물공장을 연 이유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실내에서 키우는 농산물이 안전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철역 안에 홍보용 식물공장을 차림으로써 소비자들에게 회사가 키우는 농산물이 얼마나 안전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라는지를 직접 검증받고 싶었다는 말이다.

팜에이트가 지하철 역사 안에 소규모 식물공장을 열기로 마음먹은 건 지난해 3월 무렵이다. 서울교통공사에게 제안을 받은 이후 지하철 역사 안에 식물공장을 차리는 계획을 세웠고 1년 3개월 만에 답십리역에 1호점을 내게 됐다.

지하철 역사 안 남는 공간에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시설을 채워 넣고 싶어 했던 서울교통공사와 회사가 갖고 있는 식물공장 기술을 널리 알리고 싶어 했던 팜에이트의 필요가 사로 맞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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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공장에서 키우는 상추 종류 @더농부

“이번에 문을 연 답십리 스마트팜은 저희가 계획하고 있는 다섯 개 지하철역 식물공장 중에서 규모로는 중간 정도예요. 6월 말이나 7월 초에 상도역에 들어서는 식물공장은 200평 정도 되니까. 답십리보다 열두 배 이상 더 커요. 그 안에는 채소를 기르는 식물공장뿐 아니라 어린이들이 직접 식물을 수확해볼 수 있는 체험용 식물공장과 카페도 차리려고 하고 있어요.”

팜에이트와 서울교통공사를 답십리역과 함께 상도역(660㎡), 천왕역(100㎡), 을지로3가역(63㎡), 충정로역(18㎡)까지 모두 5군데 지하철역에 식물공장을 열 예정이다. 규모로는 현재 설치 공사를 준비하고 있는 상도역 식물공장의 규모가 가장 크다. 강 부사장의 설명처럼 이 안에는 바로 옆 식물공장에서 재배한 채소를 재료로 만든 샐러드와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와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용 식물공장 등도 들어설 예정이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채소 먹는 걸 싫어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이들이 식물공장이라는 신기하게 느껴지는 공간에 들어가서 직접 채소를 수확하고 또 이걸 갖다가 직접 자기들이 샐러드를 만들게 하면 채소를 더 잘 먹게 되지 않겠어요? 이렇게 어린이들한테 수확 체험과 함께 식습관 교육도 함께 해보려고 해요.”

상도역에 들어설 식물공장 예시

답십리역 식물공장 한편에는 샐러드 자판기도 마련돼 있었다. 10여 종류의 샐러드와 채소를 판매하는 자판기였다. 5500원대 고급 샐러드부터, 3900원대 일반 샐러드 그리고 버터헤드 상추 한 포기를 통째로 판매하는 상품도 있었다. 자판기 안에 들어가는 샐러드는 팜에이트 본사 공장에서 가져오고 채소가 통째로 들어가는 상품은 바로 옆 식물공장에서 수확한 채소로 채워 넣을 예정이다. 식물공장 기술에 대한 홍보와 함께 소비자들에게도 직접 식물공장 채소를 먹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답십리역에서 재배한 채소들은 따로 본사 샐러드 가공공장으로 갖고 들어오기보단 역 주변 음식점과 구내식당들에 납품할 계획이에요. 벌써부터 몇몇 식당들한테서 여기 채소를 구입하고 싶다는 연락이 오고 있어요. 채소를 수확해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채소가 이 지역 안에서 소비되게 하려고요. 일종의 로컬푸드 개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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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공장 옆에 마련된 샐러드 자판기와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상품들

팜에이트는 지하철 식물공장 안에서 자라는 채소들을 개인들에게 사전 예약 판매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채소를 사전 예약한 소비자가 수확할 때에 맞춰 지하철 식물공장에 들러 채소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식물공장과 여기서 키운 농산물에 대해서 잘 모르고 계시는데, 이번 지하철 식물공장 개설을 계기로 식물공장에 대해서 소비자분들께 많이 알려보려고 해요. 지하철역 빈 공간에 들어서는 만큼 인테리어 효과에도 신경 써서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 관광명소로 꾸며볼 계획도 갖고 있어요. 외국에서도 지하철역 안에 식물공장이 들어선 사례는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FARM 에디터 홍선표 nong@naver.com,  출처 : 더농부 블로그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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