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역대 최장 수준으로 지속되고 있는 장마 탓에 채소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채소 산지가 침수 피해를 입거나 출하에 차질이 생겨서다. 장마가 아니어도 원래 여름은 채소 재배가 어려운 시기다. 무더위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대부분 지역은 6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는 채소 재배가 거의 불가능하다.

완벽 생육 조건에서

사시사철 채소 재배

지루한 장마 속에서도 싱싱한 채소를 재배해 샐러드로 가공, 판매하는 기업이 있다. 경기 평택시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식물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팜에이트다. 이 곳에선 온도, 습도는 물론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까지 식물의 생육 조건을 완벽하게 통제해 사시사철 채소를 키워낸다.

지난달 28일 평택 팜에이트 본사에 있는 식물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제법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곳은 1년 365일, 24시간 내내 초가을 날씨 정도인 섭씨 23도의 온도가 유지된다. 식물공장 안에선 장마도 더위도 딴나라 얘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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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에이트 식물공장 내부. 사진=팜에이트

원래 새싹 채소를 재배하던 팜에이트는 2012년 60평 규모의 식물공장을 지으면서 스마트팜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후 증축을 거듭해 현재 700평(약 2300㎡)의 식물공장에서 엽채류, 허브류 등 하루 1톤이 넘는 채소를 생산하고 있다. 샐러드 1인분이 채소 100g이라고 치면 1만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이 채소를 샐러드용으로 가공, 포장해 대형마트, 편의점, 패스트푸드 업체 등에 납품한다. 강대현 팜에이트 대표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샐러드용 채소 수요가 증가했다”며 “특히 코로나 확산 이후 온라인 판매가 급증해 생산시설을 100% 가동하고도 모자랄 정도”라고 말했다. 팜에이트는 샐러드용 채소 판매와 식물공장 설비 판매 등을 합쳐 올해 6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30% 늘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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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에이트 식물공장 안에서 채소가 자라고 있다. 사진=팜에이트

식물이 사는 고층 아파트

식물공장은 가지런하게 정렬된 선반 위에 식물이 줄을 맞춰 꽂혀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여러 개 선반을 수직으로 쌓아올린 형태로 돼 있어 ‘수직농장’으로도 불린다. 대형 도서관의 기다란 책꽂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아파트의 축소판 같기도 하다. 식물이 꽂혀 있는 선반 안에는 흙이 아닌 양액(식물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든 액체)이 들어 있다.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돼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식물의 특성에 맞춘 LED 조명을 활용한다.

식물공장의 가장 큰 장점은 생산성이다. 팜에이트의 식물공장은 세로로 6단으로 된 선반에서 채소를 기른다. 지난해 하반기엔 12단 선반으로 된 시설도 도입했다. 식물이 살고 있는 6층 또는 12층짜리 아파트라고 할 수 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같은 면적의 밭농사보다 6~12배 많은 작물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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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에이트 식물공장 전경. 사진=더농부

생산성 40배,

기후변화·고령화 등 해결할 대안

생육 기간도 노지 또는 비닐하우스 재배에 비해 30% 이상 단축된다. 온도, 습도, 조도 등을 생육에 적합하게 맞춰놓은 덕분이다. 강 대표는 “40배 이상 높은 생산성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물공장은 농업 환경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강 대표는 “기후 변화로 여름에 채소를 키우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며 “식물공장을 활용하면 한여름에도 수입을 최소화하면서 채소 수급 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고령화에 따른 농업 노동력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며 “노동집약적이기보다는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산업이어서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층에게도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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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현 팜에이트 대표는 “식물공장 채소는 노지 재배 채소보다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단언했다. 사진=더농부

무농약 재배

“노지 채소보다 훨씬 깨끗”

소비자 입장에서는 흙에서 자라지도 않고 햇볕도 쬐지 않은 식물을 믿고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법하다. 강 대표는 채소의 맛 측면에서는 종류에 따라 노지 재배 채소가 더 나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쌈 채소는 식감이 다소 질긴 것이 좋고 잎이 넓어야 하는데 그렇게 키우기엔 노지 환경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드럽고 아삭한 맛을 내야 하는 샐러드용 채소는 식물공장에서 키우는 것이 더 좋다고 강조했다.

위생 측면에선 어떨까. 강 대표는 “노지나 하우스 재배보다 훨씬 깨끗한 환경에서 키운다. 굉장히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단언했다. 외부와 차단돼 있으니 병해충이 생길 일이 없고, 병해충이 없으니 농약을 뿌릴 이유도 없다는 얘기다. 토양 중금속 오염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는 “노지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려면 세 차례의 세척과, 소독, 탈수 과정을 거친다”며 “세척하지 않은 식물공장 채소가 세척과 소독을 거친 노지 채소보다 깨끗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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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에이트 샐러드공장. 식물공장에서 키운 채소를 이 곳에서 가공, 유통업체와 식품업체에 납품한다. 사진=팜에이트

일본에서 설비 수입해 시작…

이제 일본에 역수출

팜에이트는 2009년 일본 스마트팜 기업 미라이로부터 식물공장 기술을 전수받았다. 기술을 알려주지 않으려는 미라이 사장 앞에서 거의 빌다시피 해 설비만 겨우 구입해 왔다. 하지만 식물공장을 지어 놓기만 한다고 해서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각 식물마다 필요로 하는 기온, 습도, 조도, 양분 등이 다 달랐다.

한 종류씩 재배해 보고 생육 조건에 대한 데이터를 얻은 다음에야 식물공장을 제대로 가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100여가지 채소에 대한 재배 데이터를 축적해 놓았다. 지금도 식물공장 옆에는 시험 재배용 노지와 시설 하우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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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에이트 식물공장 전경. 사진=팜에이트

초기 투자 비용도 떨어뜨려야 했다. 팜에이트가 처음 식물공장을 들여왔을 때는 시설비가 땅값과 건물 임차료를 제외하고도 평당 3000만원에 달했다. 기술 개발을 거듭해 현재 평당 40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이제 팜에이트의 ‘한국형 식물공장’은 설비를 일본에 역수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부터 일본 수출이 시작됐고 싱가포르, 몽골 등에도 수출이 예정돼 있다. 다만 코로나 영향으로 잠정 중단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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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현 팜에이트 대표가 실내 식물재배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더농부

선진국과 기술 수준 대등

남극에도 간다

최근엔 사우디아라비아에 5000㎡ 규모 식물공장을 건설하는 사업에 입찰을 제안받았다. 강 대표는 “미국, 일본 등의 기업과 비교했을 때 우리 기술 수준은 전반적으로 대등하거나 살짝 뒤처지는 수준”이라며 “그에 비해 설치 단가는 저렴해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배 노하우 면에선 굉장히 앞서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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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에이트 식물공장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수출도 하고 있다. 사진=팜에이트

내년 초에는 남극에 있는 세종과학기지에도 팜에이트가 개발한 컨테이너 팜 형태의 식물공장이 설치된다. 세종과학기지 연구원들이 먹을 채소를 조달하는 동시에 극지 환경에서도 식물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지를 실험하기 위한 목적이다.

팜에이트는 로봇을 활용한 자동화 식물공장 기술도 개발을 마치고, 내년 본격 가동 예정이다. 핸드폰, 자동차 등 제조업 공장도 유인 공장에서 자동화 무인 공장으로 발전해 왔듯이 식물공장도 사람이 관리하는 체제에서 로봇이 관리하는 체제로 진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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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에이트가 서울 지하철 답십리역에 설치, 운영 중인 스마트팜. 사진=팜에이트

지하철역 스마트팜

가정용 식물재배기 사업 확대

팜에이트가 또 한 가지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도시 농업이다. 도시인들의 일상 속에 농업이 녹아들게 해 농업을 더욱 친숙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아울러 팜에이트의 브랜드 이미지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서울 지하철역 5곳에 스마트팜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강 대표는 “농업 생산물의 최종 소비자는 대부분 도시에 있다”며 “도시 농업이 활성화돼 소비자와 직거래가 이뤄지면 유통 과정에서 생기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빈 건물과 공실 등을 도심 텃밭으로 리모델링하면 도심 공동화에 따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물재배기 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식물재배기는 전자레인지 만한 크기로 가정에 가전제품처럼 설치해 식물을 기를 수 있는 기기다. 강 대표는 “쌈 채소, 샐러드 채소, 허브류 등을 모두 재배할 수 있다”며 “코로나 영향으로 비대면 생활이 확산되면서 가정용 식물재배기 시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FARM 에디터 유승호

nong-up@naver.com

더농부


국내 최대 식물공장 기업 팜에이트의 강대현 대표가 ‘2020 팜테크 포럼’에서 한국형 식물공장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강연합니다. 8월27~2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2020 팜테크 포럼’엔 국내외 스마트 농업과 식품·유통업계 전문가들이 연사로 나섭니다. ‘한계를 뛰어넘는 스마트농업, 상상이 현실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포럼에서 ‘스마트 팜’의 미래와 농식품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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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 에디터 유승호 nong-up@naver.com, 출처 : 더농부 블로그 2020.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