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스마트팜서 땄어요”…채소가 좋아진 도시 아이들

상도역 `메트로팜` 하루 500포기 생산
남부터미널역 지하상가·신당역엔 일자리 창출형 대규모 스마트팜도
도시텃밭 면적 9년새 13배 증가
도시농부는 16배 늘어난 242만명
옥상 5%만 활용해도 27만평 생겨도시농업 사회적 기능 관심 커져
서울시 “일상에 지친 시민들 힐링”◆ 스페셜 리포트 / 도시농업 새로 태어나다 ◆

서울지하철 7호선 상도역 안에 있는 `메트로팜`을 찾은 어린이들이 식물공장 안에 들어가 작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강사로부터 작물이 자라는 원리를 배우고 실제 수확도 해보면서 도시농업을 체험하게 된다. 메트로팜은 상도역 이외에 2호선 충정로역과 을지로3가역, 5호선 답십리역, 7호선 천왕역에 있다. [이승환 기자]

“도심 여유 공간에 생산성이 일반 농사보다 100배 높은 식물공장을 만듭시다.”10년 전인 2010년 3월 매일경제가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한 국민보고대회에서 발표자는 이렇게 외쳤다. 주제는 ‘아그리젠토 코리아-첨단농업 부국(富國)의 길‘. 사회 각계각층 오피니언 리더 400여 명 앞이었다. 한국 농업의 근본적 문제점을 분석하면서 우리 농업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이때 농업 혁신을 위한 액션플랜으로 제시한 17개 어젠다 가운데 두 번째가 바로 도심 여유 공간에 식물공장을 짓자는 것이었다.당시만 해도 뜬금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도심 여유 공간에 식물공장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대표적인 장소가 지하철 역사와 지하상가 등 지하 여유 공간이다. 이뿐만 아니라 건물 옥상, 지하 계단, 자투리 텃밭, 아파트 베란다 등에서 농사를 짓는 도시민도 증가하고 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른바 ‘도시농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시농업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개최를 즈음해서다. 역사상 최대 규모 글로벌 행사를 앞두고 각종 생활개선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이때 농촌진흥청이 ‘생활원예’ 개념을 처음으로 들고나왔다. 첫 사업이 아파트 건설 붐에 편승한 ‘베란다 원예’였다. 이어 1992년 우리나라 최초의 주말농장이 청계산 자락인 서울 서초구 원지동에 생겼다.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대원주말농장이 바로 그곳이다.

이후 조용하게 성장하던 도시농업이 2010년 이후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경기도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2010년 104㏊이던 전국 도시 텃밭 면적은 지난해 1323㏊(약 400만평)로 9년 새 12.7배 늘었다. 여의도 면적의 1.4배에 해당하는 도시 텃밭이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도시농업 참여자 수는 같은 기간 15만3000명에서 241만8000명으로 15.8배 증가했다.

양적성장 못지않게 질적인 성장이 더 눈부시다. 단순히 남는 땅을 활용한 텃밭 농사에 그치지 않고 인공 조명으로 작물을 기르는 첨단 수직농장을 포함한 스마트팜 형태의 도시농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또한 가족 먹거리 확보용 작물 생산에 방점이 찍혀 있던 과거 도시농업과 달리 최근에는 힐링과 치유 등 정서적인 기능을 중시하는 도시농업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이 창조한 지하철역 식물공장

한국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도시농업 후발 국가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사실상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갖고 있는 도시농업이 있다. 바로 지하철역 식물공장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서울지하철 7호선 상도역에 들어선 ‘메트로팜’이다. 상도역 계단으로 내려가다보면 중간에 큰 식물공장이 눈에 띈다. 이전에는 아무런 용도로도 사용되지 않았던 자투리 공간이다.

여기에 식물공장을 설치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건 작년 말 임기를 마친 김태호 전 서울교통공사 사장이었다. 김 전 사장은 “온라인 시대가 되면서 지하철 역사 안에 있던 옷 가게 등 매장이나 전시 공간이 외면받고 있었다”며 “이런 공간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 영국의 한 스타트업이 지하철역 방공호에 스마트팜을 설치했다는 기사를 접한 뒤 이거다 싶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는 해외에서 따왔지만 이를 지하철역 사업의 하나로 본격화한 것은 우리나라다.

상도역 메트로팜 식물공장은 6단으로 설계된 선반에서 LED 조명과 수경재배 방식으로 샐러드용 야채류를 재배하고 있다. 바닥 면적 221㎡(약 37평)에서 하루 500포기 엽채류가 나온다. 이 야채는 메트로팜 내에 있는 카페에서 직접 샐러드로 만들어 팔리기도 하고, 다른 유통업체에 공급되기도 한다.

이곳 식물공장은 요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름엔 야채류 공급이 줄면서 가격이 급등하기 때문이다. 여기선 날씨에 관계없이 온도를 섭씨 20~25도로 유지하며 사계절 내내 같은 품질의 야채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겨울엔 주로 허브류 재배로 차별화한다.

메트로팜 운영사인 팜에이트의 여찬동 선임 연구원은 “㎏당 1만원 선 하는 허브류가 겨울철엔 일시적으로 20만원까지 오르기도 한다”며 “허브류를 많이 쓰는 레스토랑은 메트로팜과 고정 계약을 맺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메트로팜은 상도역 이외에 2호선 충정로역·을지로3가역, 5호선 답십리역, 7호선 천왕역 등 서울 4개 역에 더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빈 공간을 내주는 대신 민간 업체가 올리는 매출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아 서로 윈윈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인기 폭발이다. 프랑스 농업협동조합 은행 성격의 크레디아그리콜 고위 임원들이 작년 말 답십리역을 다녀간 것을 비롯해 아랍에미리트(UAE) 농업식품안전청, 이탈리아 농업경제연구위원회, 인도 뭄바이메트로 등이 줄줄이 메트로팜을 찾았다. 여 선임 연구원은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올해도 외국 손님 맞이에 분주한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상가를 통째로 스마트팜으로

식물공장의 시장성을 확인한 서울교통공사는 도시농업의 판을 본격적으로 키우고 있다. 지하상가를 통째로 스마트팜으로 바꾸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장소는 3호선 남부터미널역과 연결된 지하상가다. 옛 진로종합유통 건물 지하 공간으로 121개 상가가 있던 자리다. 민간에서 운영하다가 상권이 완전히 죽은 탓에 2008년 기부채납된 이후 10년 넘게 공실로 있는 곳이다. 지하 1~3층에 각각 폭 10m, 길이 180m 터널형 공간이 있다. 전체 면적은 5629㎡(약 1700평)다.

초기 투자비만 100억원에 달한다. 농촌진흥청이 국비 27억원을 투자하고, 나머지는 민간 컨소시엄이 맡는다. 컨소시엄엔 넥스트온과 리치앤코, 바른팜, LG전자, LG CNS 등이 참여하고 있다. 한창 공사 중인 이곳은 내년 5월이면 국내 최대 규모 식물공장형 스마트팜 단지로 거듭나게 된다.

이곳은 다양한 기능을 갖춘 스마트팜 플랫폼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핵심인 식물공장은 지하 2층에 들어선다. 여기엔 스마트팜 체험 공간도 별도로 설치된다. 지하 1층은 바로 아래층에서 생산된 작물을 판매하는 유통시설로 운영된다. 지하 3층은 전문재배농과 창업농, 셰프 육성을 지원함으로써 농업의 전후방 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지로 운영될 예정이다.

채유진 서울교통공사 미래사업팀장은 “남부터미널 지하 스마트팜 플랫폼이 완성되면 시민들은 녹색의 복합문화공간을 향유하고, 청년들은 농업 분야 창업의 꿈을 키우고, 농업인들은 스마트팜 테스트베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어 6호선 신당역에도 대규모 전시·체험형 스마트팜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당초 지하철 10호선 환승을 위해 마련됐다가 지금은 빈 공간으로 남은 곳이다. 전체 2181㎡(약 660평) 공간에 식물공장과 함께 아쿠아포닉스(물고기 양식과 수경재배 결합) 시설, 전시·체험 홍보관, 식음료 판매 코너 등이 설치될 예정이다. 서울교통공사는 나아가 278개 지하철역과 11개 차량기지를 ‘콜드체인(냉장물류)’으로 연계하는 농산물 생산·유통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텃밭 확 늘리려면 빌딩 옥상 활용해야

도시농업이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큰 땅은 사실 건물 옥상에 있다. 서울시 소재 건물 옥상 면적은 총 27㎢(약 820만평, 오충현 동국대 교수 분석)로 추정된다.

서울시에서 30년 이상 도시농업을 담당하다가 최근 퇴직한 송임봉 전 도시농업과장은 “전체 옥상의 5%를 텃밭으로 활용한다고 하면 물탱크 등 면적을 제외하고도 대략 27만평의 텃밭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50층짜리 여의도 전경련회관 옥상도 그런 곳이다. 이곳 관리를 맡고 있는 더스카이팜은 도심 정원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옥상에 스마트팜을 추가하기 위해 얼마 전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스마트팜 경진대회를 열었다. 김세연 더스카이팜 대표는 “옥상정원에 첨단농업이 결합되면서 도시농업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 우승자로 선정된 마이띵스는 소형 식물공장 제작에 들어갔다. 이상호 마이띵스 대표는 “가로세로 각 2m, 폭 65㎝ 짜리 소형 식물공장 2개가 9월 초 전경련회관 옥상에 설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노인복지회관과 중랑구 구립직업재활센터 등 공공시설은 물론 광진구 동양파라곤아파트 등 민간시설에도 옥상텃밭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서울시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부터 5년간 옥상텃밭 조성사업 확대 방안을 마련했다. 다양한 예산 지원을 통해 매년 150개 건물에 1만5000㎡(약 4500평) 면적으로 옥상텃밭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김광덕 서울시 도시농업과장은 “옥상에 텃밭을 만들면 시민들이 힐링할 수 있어 정서적인 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데다 미세먼지 저감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옥상에서는 도심 양봉도 시도되고 있다. 현재 서울 31개 건물에서 옥상 양봉이 이뤄지고 있다. 전체 봉분 숫자는 324개에 달한다. 한 곳에서 10개 정도 봉분이 운영되는 셈이다. 다만 시민 인식의 벽을 넘어서야 하는 한계가 있다.

김광덕 과장은 “도심 양봉은 자연 생태계 복원에 도움이 되는 장점이 있지만 벌을 꺼리는 시민들의 민원이 발생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 한복판에 등장한 도시농부

최근 들어서는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 일반인들도 스마트팜을 활용한 도시농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사실은 서울 서초구 자동차산업회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최근 설치된 스마트팜에서 확인된다.

이 스마트팜은 돌아가는 트롤리 컨베이어에 매달린 화분에서 작물을 재배한다. 현재 216개 화분에서 상추가 자라고 있다. 자동차 타이어 휠 업체인 코리아휠의 최훈 회장이 개발해 보급에 나선 바로 그 스마트팜이다. 설치를 주도한 사람은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다.

김 교수는 자동차회관 지하에서 ‘꼼파니아 학교’라는 CEO·전문가 재교육 프로그램을 재능기부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자신을 포함해 다수가 농업에 관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 교수는 스마트팜을 함께 운영할 사람을 모집했다. 순식간에 회원 50여 명이 스마트팜포럼 참가 신청을 했다. 회원에겐 1인당 화분 4개가 배정됐다. 이들은 분기별로 일정액의 회비를 내고 자신의 화분에서 작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도시민들은 농업에 대한 꿈이 있어도 시간적·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실제 농사를 짓기 어렵다”며 “도심 스마트팜을 통해 직접 농사를 경험하면서 힐링도 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색다른 도시농부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강서구 마곡지구에 건립될 예정인 ‘(가칭)농업공화국’이 바로 그것이다. 도시농업을 주제로 한 복합 전시체험관이다. 도시농부 체험을 하는 테마파크인 셈이다. 용지 면적만 1만1817㎡(약 3600평)로 올해 말 착공해 2023년 5월 완공할 예정이다. 1000억원이 투입돼 농업전시관과 스마트팜, 도시농부 교육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주성호 서울시 도시농업지원팀장은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시민과 어린이들이 직접 농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더 각광받는 도시농업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비대면)의 확산은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기본적으로 재택근무가 늘어난 데다 자가격리가 일상화되면서 작물을 직접 재배하는 장점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이원석 경기도 농업기술원 팀장은 “작물 재배는 외부와 단절된 생활 속에서도 일정 정도 음식을 제공해줄 수 있는 데다 지루한 격리생활 속에서 정서적인 즐거움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도시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도시농업의 경제적·환경적 기능 이외에 사회적 기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민의 스트레스 해소와 심신 치유, 힐링, 가족과 이웃 간 소통, 공동체 문화 회복 등이 도시농업을 통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농업기술센터가 올해부터 자체 농장을 활용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반기에는 네덜란드 등에서 시도되고 있는 치매노인 대상 ‘케어팜’ 성격의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조상태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소장은 “바쁜 일상에 지친 도시민들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 3월 치유농업법이 제정됐듯이 앞으로는 도시농업에서도 치유적 기능이 더욱 강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농업은 또한 어린이들의 식습관 개선에도 상당한 효과를 내고 있다. 지하철 상도역에서 운영하는 ‘팜 아카데미’에서 스마트팜 체험교육을 받은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채소류와 친숙해진다.

이호정 팜 아카데미 강사는 “자녀와 함께 스마트팜 수확 체험을 하고 돌아간 어머니들로부터 채소를 잘 안 먹던 아이가 갑자기 채소를 찾기 시작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전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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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훈 농업전문기자, 출처 : 매일경제 2020.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