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냄새` 맡은 투자 귀신들…글로벌 애그테크에 64억弗 베팅

◆ 스페셜 리포트 / ‘포스트 코로나’ 농업의 재발견 ◆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 위치한 팜에이트의 첨단 식물공장 `T·FARM 2` 안에서 한 직원이 싹이 자란 엽채류가 더 크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다른 선반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래 6단, 위 6단 등 총 12단으로 운영되는 이 식물공장에서는 LED 조명과 온도, 습도, CO2 농도 등이 자동으로 조절된다. [정혁훈 기자]

국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 확인된 지 어느덧 5개월째.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사상 초유의 재난지원금까지 지급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나빠졌다.

반도체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많은 산업이 전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처럼 엄중한 상황에서 오히려 그 가치가 재조명되는 산업이 있다. 바로 농업이다.

품목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농업은 코로나19 충격에도 거의 타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식품에 대한 온라인 수요가 늘면서 매출이 확대된 분야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탓에 글로벌 교역이 급감하자 식량자급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농산물을 해외에 의존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재앙에 대한 우려다.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농업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미래 가장 유망한 산업은 농업”이라는 주장을 10여 년 전부터 펼쳐온 투자의 대가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의 전망대로 농업이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투자회사들은 농업에서 ‘돈 냄새’를 맡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수익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투자회사들 속성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산업계의 큰손으로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프라이빗 에퀴티(PE)’를 비롯해 벤처캐피털, 액셀러레이터 등이 농업 분야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농업 분야의 창업 열기가 뜨겁다. 농업에 연관된 식품산업까지 포함하면 스타트업 창업 열기가 정보기술(IT) 바이오 등 기존 주력 분야 못지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농식품펀드로 몰리는 벤처캐피털

투자회사들의 농업에 대한 관심을 가장 확실하게 체감하고 있는 곳은 농업정책보험금융원(농금원)이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농금원은 정부가 출자하는 농식품 벤처 모태펀드 관리기관이다. 심사를 거쳐 선정된 벤처캐피털에 정부 예산을 주고, 같은 금액만큼 벤처캐피털이 돈을 태우게 하는 방식이다. 연간 1000억원 정도가 이런 방식으로 농식품 스타트업으로 흘러간다.

농금원은 2011년부터 이런 일을 해왔는데 초기에는 펀드모집 공고를 내도 벤처캐피털 반응이 시큰둥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지원 벤처캐피털 숫자가 확 늘기 시작했다. KB인베스트먼트와 현대기술투자, 나우아이비캐피탈, 유티씨인베스트먼트 등 대형 벤처캐피털들이 달려들고 있는 것도 달라진 풍속도다.

특히 펀드가 결성된 이후 첫 투자가 이뤄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크게 단축되고 있다. 2012년에는 10개월 정도 걸리던 것이 지난해에는 3개월 미만으로 줄었다.

임은미 농금원 투자기획부장은 “첫 투자에 걸리는 기간이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투자할 만한 기업이 많아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 펀드를 청산할 때 확정되는 투자수익률이 높은 것도 벤처캐피털들을 유혹하고 있다. 농금원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청산한 8개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52%에 달한다. AJU-아그리젠토 펀드는 조성금액 200억원에 분배금액 459억원을 기록해 무려 130% 수익률을 올렸다. 이들 8개 농식품 벤처펀드 중 손실을 기록한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산업계 ‘큰손’ PE들도 관심 많아

인수·합병(M&A)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PE들도 농기업에 주목하고 있다. IMM인베스트먼트와 어펄마캐피탈 등 유력 PEF들이 수년 전부터 농기업에 투자를 시작했다.

최근 들어서는 추가 투자 유치를 통해 회사 규모를 키우거나 상장(IPO) 혹은 재매각을 통한 투자금 회수를 추진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IMM인베스트먼트는 식물공장·채소가공 업체인 팜에이트에 총 192억원을 투자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팜에이트는 최근 프리IPO(상장 전 지분 투자) 성격으로 1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추가 모집하기도 했다. 여기엔 산업은행(50억원)을 비롯해 신영젠티움 킹코투자파트너스 등 다양한 투자사들이 참여했다. 팜에이트는 2022년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구재윤 IMM인베스트먼트 상무는 “포트폴리오 다각화 차원에서 농업 분야 투자가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농기업의 성장성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관심을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팽이버섯 회사인 대흥농산에 대한 데일리푸드홀딩스의 투자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다. 데일리푸드가 약 650억원에 인수한 대흥농산은 국내 팽이버섯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어 시장지배력이 높은 데다 지난해 457억원 매출에 82억원의 순이익을 거뒀을 정도로 수익성도 뛰어난 것이 강점이다. 데일리푸드는 대흥농산을 재매각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성사될 경우 국내 농기업 M&A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다른 PE인 메인스트리트인베스트먼트는 최근 마그나인베스트먼트, 화이인베스트먼트 등 벤처캐피털들과 함께 농가에 스마트팜 솔루션을 공급하는 그린랩스에 총 65억원을 투자했다. 이로써 그린랩스가 받은 투자는 총 105억원으로 늘었다.

안정성·수익성에 성장성도 겸비

투자업계에서 농업 분야 기업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데다 수출 확대를 통한 성장 가능성도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팽이버섯 국내 1위인 대흥농산은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이 안정적으로 20% 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 회사는 PE나 벤처캐피털들이 기업가치 평가 때 가장 중시하는 에비타(EVITDA·법인세와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가 연간 150억원에 달한다. 더구나 미국에 이어 동남아 지역으로 팽이버섯 수출 확대 가능성도 있어 외형 성장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태엽 어펄마캐피탈 대표는 “성장성이 높은 업체는 베타 값(변동성)이 크다는 단점이 있는데, 농식품 분야에서는 성장성과 안정성을 겸비한 기업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더구나 농식품 분야에선 현금 창출 능력이 뛰어나면서도 IT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기업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농업의 강점은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PE가 인수한 대흥농산이나 팜에이트, 성경식품(김) 등은 올해 들어 매출 타격이 거의 없다. 오히려 온라인 농식품 판매가 늘어나면서 혜택을 보는 측면도 있다. 4차 산업혁명도 농기업에 새로운 판을 깔아주고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산업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을 지낸 민승규 한경대 석좌교수는 “세계 최고의 농업 강국이자 농업 수출 글로벌 2위인 네덜란드 농업의 경쟁력은 빅데이터와 AI를 농업에 접목하는 능력에서 나온다”며 “한국도 ICT 강국인 만큼 농업 잠재력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100억원을 투자 유치한 팜에이트의 강대현 부사장은 “공식적으로 투자설명회(IR)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스마트’ 농업에 대한 관심이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 것에 내심 놀랐다”고 털어놨다 .

수출을 늘릴 수 있다는 기대감도 어느 때보다 크다. 이미 PE에서 인수한 대흥농산이나 팜에이트, 성경식품 등도 내수보다는 수출 쪽에서 미래 성장 가능성을 찾고 있다. 당장은 수출 비중이 높지 않지만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나면 미국과 아시아 지역 수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도 제기한다. 익명을 요구한 PE 대표는 “ICT 기업은 성장성이 좋지만 기술 변화가 너무 빨라 잘나가던 기업도 2~3년 만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며 “10년 후에도 계속 잘나갈 기업을 고르는 게 ICT 분야보다는 농업 분야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확실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농업인들과 갈등 우려가 걸림돌

투자회사들이 농업을 새로운 성장 분야로 주목하고 있지만 추가로 투자를 늘리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있다. 기존 농업인들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옛 동부팜한농이 경기도 화성에 아시아 최대 규모 유리온실을 지었다가 농민들 반발을 못 이기고 2015년 투자비의 절반 값에 중소업체에 매각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투자회사들이 농기업에 자본을 투입하는 것은 대형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농민들 반발을 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PE업계 한 관계자는 “수익성을 내려면 투자를 대규모로 늘리거나 동종 업종 다른 기업을 M&A해서 규모를 키워야 한다”며 “대형화를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가 농민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어 투자 대상을 찾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말했다.

PE 입장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 되는 농기업이 많지 않은 것도 투자를 늘리는 데 애로사항이다. PE는 인수가격이 500억원 정도는 넘어서는 매물에 관심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일부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제외하고는 그 정도 가격을 넘어서는 농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삼정KPMG에서 농업 등 신규 분야 컨설팅을 총괄하는 박문구 전무는 “농민들도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품목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며 “새로운 특용작물을 중심으로 ICT를 접목해 첨단화하는 방안 등을 유력하게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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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훈 농업전문기자, 출처 : 매일경제 2020.05.31